Raoul's View

[스크랩] (펌) 여자가 쓴 페미니즘의 허상 --- 에스테 빌라

라 울 선생님 2010. 3. 1. 12:35

 

 

 

길들이는 여자와 길들여지는 남자

 


원작은 1971년에 발간되었다. 하지만 지금 읽어도 굉장히 획기적이고, 자극적이다. 70년대 발행될 당시의 세간의 반응이 어느 정도 추측된다. 제목(원작의 제목은 모르겠지만)인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은 내용을 정말 잘 함축했다. 저자는 남자를 노예에, 여자를 조련사에 비유한다.

 

책은 착취당하는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고 주장한다. 여자는 우둔하고, 단순하다고까지 한다. 하지만 남자를 다루는데 만큼은 소질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자는 남자인 자신이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착취대상으로 여기게끔 한다. 사실은 그 자신이 착취당하면서도 말이다. 저자는 나름의 예시와 설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파한다. 모두 어느 정도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책의 중요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이를 ‘희생’이라 표현하지만, 사실은 편안함을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다. 남자가 돈을 벌어다 줄 것이기 때문에 경쟁이 난무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장생활을 계속할 이유가 그다지 없는 것이다.

 

- 저자는 여자는 일반적으로 멍청하고, 호기심이 적다고 말한다. 15세 정도가 되면 그 때부터 자신의 외형을 가꾸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여자에게 외형의 향상은 좀 더 부유하고, 지위가 높고, 잘 길들여질 만한 (한 마디로 우수한 굴종의 대상인) 남자를 선택할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잠깐의 외출을 위해 몇 시간씩 화장을 한다. 옷을 고르는데, 스카프 색깔을 선택하느라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들인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전혀 지적이거나 생산적인 활동과는 관련이 없다. 남자는 여자의 그러한 활동을 ‘여성적’이라는 표현으로 감싸고 오히려 가치를 높여서 생각 한다”

 

- 여자는 남자가 겪지 않는 출산의 고통과 가사의 부담을 겪지만 실상은 과장된 측면이 많고 때로는 착각하는 면도 있다. 몇 개월 동안 배가 불러 있다는 이유로 (여자들의 거의 유일한 임무인) 자신을 꾸미고 남자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활동마저도 하지 않아도 된다.

즉 한층 게으름을 피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 기간 동안 여자는 더욱더 남자위에 군림하는 동시에 그녀의 의무(외모 가꾸기, 섹스, 단순한 가사활동)에서도 일정부분 벗어난다. 남자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오히려 몇 개월 동안 무거운 몸인 여자를 안타깝게 여긴다.

 

- 몇 시간의 출산의 고통은 과장된 측면이 많다. 아마도 여자들이 남자가 자신에게 더 굴종하도록 하기 위해 과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출산의 고통은 남자가 직접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여자들의 얘기가 출산의 고통에 대한 유일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만약 몇 시간 동안 치과 치료를 받는 대가로 평생 동안 굴종의 대상을 얻는데 유용한 것이라면, 그것을 감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저자는 출산의 고통을 치과 치료에 비유했다. 저자가 남자였다면 터무니없는 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말한 저자는 여자다.

 

- 여자도 결혼 후에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들이 일하는 이유와 다르다. 남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다. 즉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반면, 여자는 다르다. 그녀들이 즐기는 단순한 가사일(청소, 빨래, 설거지..)이 무료함을 달래는데 부족해서이다. 그리고 그녀가 번 수입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 그것은 그녀에게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번 돈은 자신의 몫이고, 남자가 번 돈도 일정부분 자신의 몫이다. 남자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랑 비교되는 부분이다.

 

- 여자의 착취를 여러 매체들은 옹호한다. 그 이유는 생활전반에 걸친 소비재의 구매자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일에 치여 쇼핑할 여유도 없고 그 쇼핑한 물건을 사용할 시간도 없지만, 여자는 다르다.

 

단순한 가사일 (그것마저도 기술의 발달로 훨씬 수월해졌다. 밥은 밥통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집안 공간은 점차 부엌활동이 편하게 변화한다) 혹은 소일거리(뜨개질, 수다)는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기 때문에 TV 광고나 홈쇼핑 볼 시간이 되고, 직접 쇼핑몰에 가서 쇼핑할 여력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주도, TV, 신문, 판매자들도 여자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녀가 사용하는 돈은 남자가 번 돈일 확률이 높지만 직접 구매하는 당사자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 저자는 여자 중에도 지적인 여자가 있다고 한다. 그런 부류에는 못생긴 여자, 즉 남자를 굴종시키는데 조건이 좋지 않은 여자일 가능성이 많다. 남자가 자신에게 굴종당할 확률이 아름다운 여자보다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남녀 비율이 1:1이거나 오히려 여자가 적기 때문에, 착취할 남자를 획득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물론 우수한 굴종의 대상인 남자를 획득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 책은 여자가 남자와 다르게 섹스에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섹스광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섹스에 전혀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일반적인 여자는 그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는 어느 단계를 지나치면 섹스에 대한 조절이 어렵다. 이러한 점은 여자가 남자를 길들이는데 유용한 수단이다. 즉 조련하는데 필요한 채찍과 당근 중에 섹스는 아주 괜찮은 당근이기 때문이다.

 

- 여자에게 있어 남자의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자가 못생긴 남자와 커플인 경우가 많다. 남자의 외모가 이왕이면 잘 생기면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외형이 못났더라도 우수한 품질(돈, 지위, 여자에게 복종)의 착취대상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돈이 많고 못생겼다면 조련하기가 더 쉬워진다. 왜냐하면 남자의 입장에서는 못생긴 자신과 살아주는 아름다운 여자가 큰 희생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동시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더 많은 돈을 쓰고, 말도 더 잘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는 능력 없는 아름다운 남자보다 능력 있는 못난 남자를 더 선호한다.

 

포르노 스타, 모델, 삼류 모델 등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외형이 뛰어난 여자들이 거물급 남자들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부인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단지 외형만 뛰어난 여자도 거물급 남자와 결혼하면서 그 남자와 동등한 수준의 돈과 지위를 한 순간에 획득한다. 설사 그 남자의 외형이 볼품이 없거나 나이차가 많아도 그게 문제 될 건 없다. 차후에 남자가 일찍 죽거나, 그와 헤어져도 괜찮다. 그녀는 이미 유명인사이고 엄청난 위자료를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 재클린 케네디가 케네디를 유혹하는데 성공한 것 외에 그녀가 지금까지 우리의 머리속에 남아 있을 만큼 뛰어난 점이 있는가? 케네디와 결혼했기 때문에 그녀는 뛰어난 혹은 유명한 존재로 남은 것뿐이다. 그녀정도의 여자는 수두룩하다.

 

- 저자는 계속해서 여자가 착취자인 이유와 그것을 인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저자의 시각은 때로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느낌까지 든다. 예를 들면 성적으로 어필할 시기가 지났을 때 남자를 착취할 유익한 볼모로 아이를 말한 점 같은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듯이 그녀의 얘기가 옳고 그름을 떠나 그녀의 시각은 신선하고 용기가 필요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녀의 얘기는 귀기울일만하다. 책은 남녀에 대한 특정한 방향의 생각에 있어 심각한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준다. 저자는 지적 수준이 높은 여자의사이다. 지금처럼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시대가 아닌 1935년생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여자로서 그 의사라는 직위는 지금의 의사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의사라는 직위자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의사나 작가로 활동할 정도의 지적인 능력이 있기도 하거니와, 본인이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의 얘기는 좀 더 신뢰성을 얻는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여자는 아닐지라도 일정부분의 여자들의 심리나 행태를 반영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책이 출간될 당시 저자는 ‘여성 증오자’ ‘보수주의자’심지어 ‘파시스트’로 몰렸다고 한다. 물론, 그녀의 얘기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었다. 상당수가 여자였다. 이는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그녀 외에도 다른 여자들이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여성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다가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여자임을 강조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는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남자와 똑같은 수준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마다한다. 기술이 발달된 지금, 일부 분야만 빼고는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다. 방아쇠(군대) 당기는 데는 큰 힘이 들지 않으며, 큰 트럭이라 해도 운전대 돌리는데 큰 힘이 드는 건 아니다. 문제는 상황에 따라 남녀평등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기준이 바뀌면 그것은 기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판단을 내릴 여지가 없어진다.

 

- 필자는 여성 증오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 내용의 일정부분에 공감한다. 맞벌이를 한다면 남녀가 가사 분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에 방영된 드라마 ‘열아홉 순정’에서 큰 사위 안정훈이 맡은 역처럼 남자 중에도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집안일이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남자라면 집안 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사랑하는 남자가 집안일이 적성에 맞다면 그리고 자신도 일을 하고 있다면 그런 남자와 결혼할 의향이 있는가? 솔직히 말해 달라. 혹 이 물음에 집안일을 하겠다는 남자를 ‘파렴치한’이나 ‘뻔뻔하고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이 많을수록 이 책의 내용은 진실에 가깝다. ‘파렴치한’으로 표현한 행위를 많은 여자들이 당연시 하는 것을 이 책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일이 중요하다면, 그걸 꼭 여자가 해야 될 이유가 있는가? 여자가 남편과 아이를 부양할 직업을 가지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가? 요즘은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하다. 그리고 굳이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고 여기는 여자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결혼을 할 의향이 있는 여자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여자들도 돈을 많이 버는 추세지만, 그 돈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가족을 부양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것을 여자들은 납득할 수 있는가? 납득할 수 있다면 이 책의 내용은 적어도 그렇다고 대답한 여자들에게는 거짓에 가깝다.

 

- 책의 가치를 높이 사는 건 독특한 시각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각이 매우 논리적이고 그럴 듯하다. 특정한 시각이 일반화되고 그것이 쌓이면 또 다른 시각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것은 아예 어떠한 시각이 없는 상태에서 특정한 시각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이 책의 저자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을 펼치고 읽어 나갈 때 대부분의 문장이 길어 읽는 게 쉽지 않았다. 마침표가 나올만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쉼표와 접속사로 문장을 늘려놓았다. 내용 자체는 어려울 게 없었지만 어색한 면도 많았다. 하지만 이내 적응되었고, 신선한 시각에 빨려들었다.

 

- 책의 평점(95점, 내 기준으로 95점은 거의 최상의 평점이다.)을 더 높여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 매우 극단적이고 단정적이라는 면에서 평점을 줄였다.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도 잘못됐다고 보지만,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알맹이 내용만 다를 뿐, 그 형식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성별로 나타나는 주요한 성향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남자, 여자 이 두부류로만 뭉뚱그려 얘기할 만큼 인간이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남녀를 떠나 10사람이 있다면, 10사람 모두 그 나름의 개성이 존재하리라.

 

성별이 주요한 참고사항이라면 개개인별 특성 또한 그에 못지않게 주목해야 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자가 통계적으로 흔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얘기라면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100%인 얘기인 것이다. 반대로 여자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을 뜨개질 좋아하는 여자에 비해 나쁘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남녀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건 이성끼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끼리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그것은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착취하고 착취당한다기보다는 각각의 인간으로서 판단할 문제이다.

 

 

P.105 여자들의 거짓 눈물에 대한 대목

 

<감정의 빈곤>은 또한 여성이 최대한으로 남성의 감성을 억압하고, 그와 동시에 그녀 자신은 감정이 풍부하고 섬세하다는 평판을 얻는다는 점에서 또 다시 확인 된다. 눈물주머니는 방광처럼 훈련에 의해 의지를 따르게끔 되어 있는 조그만 액체 저장기다. 성인은 눈물을 참아서 침대를 적시지 않을 수 있다. 남자아이는 그렇게 길들여진다.(다시금 여성을 비하함으로써-<사내가 울면 못써>,<넌 계집애가 아니야!>. 여자아이는 그런 금지를 받지 않고, 곧 그 이점을 이용하기를 배운다. 여자가 우는 것을 남자가 볼 때, 액체 저장기를 제어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P.150 소비 주체는 여자!

 

그가 오늘 이웃의 아내에게 아첨을 해서 거실 카페트를 구입하게 하였다면 내일은 그 여자의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온수 욕조를 구입하게 만들리라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 남자가 무슨 재주로 아내가 산 카페트 값을 지불 할 수 있겠는가?

 

 

P.200 소위 해방된 여자

 

1) 그녀는 (사고 싶은 잡동사니에 드는 돈을 뒷받침할 만한 돈을 벌지 못하는)<실패자>와 결혼해 버렸다.

2)생물학적 원인으로 자식을 낳지 못했다.(어떤 남자들은 열정이 식은 후에 여자를 부양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3)못생겼다.

4)그녀는 해방된 여자다.

5)그녀는 특정한 직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그래서 처음부터 노예와 아이들을 포기했다.)

 

P.236 오직 여성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오직 여성만이 이 길들임과 착취의 악순환을 끝장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렇게 할 이성적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감성에 호소할 희망 또한 전혀 없는 바, 냉정하며 어떤 동정심도 갖고 있지 않은 존재가 바로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항상 다시 이 유치함에, 이 원시성에, 이 우둔한 <여자다움>에 함몰 될 것이고, 훌륭한 몽상가인 남성은 그들의 몽상으로부터 도저희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 작가가 쓴 <이런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오직 여성만이 이 길들임과 착취의 악순환을 끝장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렇게 할 이성적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감성에 호소할 희망 또한 전혀 없는 바, 냉정하며 어떤 동정심도 갖고 있지 않은 존재가 바로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항상 다시 이 유치함에, 이 원시성에, 이 우둔한 <여자다움>에 함몰 될 것이고, 훌륭한 몽상가인 남성은 그들의 몽상으로부터 도저희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리숙한 남자 부려먹기 Der Dressierte Mann -에스테빌라


 

 

 

번호 : 82   글쓴이 : ANTI-FEMI
조회 : 329   스크랩 : 1   날짜 : 2006.01.19 10:26

여성해방은 허구다. 여자는 남자에게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여성의 해방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특권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여성은 해방되기를 전혀 원치 않았다. 해방되기를 원했다면 벌써 옛날에 해방되지 않았겠는가? 여자들은 오히려 계속해서 남자들을 이용해 먹으며 편히 살기만을 바란다"

이것이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여성운동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강력한 주장의 배경에는 치밀한 관찰과 날카로운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에스테 빌라는 남녀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남성과 여성을 분석한다. 그녀는 우선 남성을 노예로 정의한다. 남자의 인생은 그가 하는 일에 따라 규정되며 그가 번 것은 여자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은이는 서슴없이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선언한다. 여성은 남성을 착취해서 편히 살 수 있으므로 자기 발전의 노력을 포기하는 까닭에 점점 우둔해진다.

여자들은 스스로를 비하시키고 남자의 자부심을 드높이는 `남자다움`이라는 것을 부추긴다. 자기 감정대로 울어 버리는 대신 근엄하게 고통을 참아내고, 화려함이나 사치는 여자 같은 것이니까 멀리하고, 좋든 싫든 변함없이 근면하게 일하며, 창의력과 성취욕을 발휘해 세계를 이끌어 나갈 것.

여자에게 친절한 매너를 보여주고 자기에게 불리할 때에도 신의를 지키고 언제나 진실할 것. 당당한 남자답게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질 것. 이 모두가 여기 해당되지 않는 여성에게는 극도로 이용하기 좋은 특성들이다.

남성이 열심히 일하고 경쟁할수록 여성은 사치를 누리며 바보스러워진다. 지은이는 남성이 이 악순환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여성이 남성을 길들이기를 그치고 기생충 생활을 포기할 때에만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 않는 동안에는 여권 운동 역시 다른 형태의 여성적인 엄살일 뿐이다. 지은이는 `해방된 여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그녀는 남자 동료들보다 승진이 느린 것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긴 하나 그들의 살인적 투쟁에 참여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것은 즉 아무리 `해방`되었다 할지라도 `여자이기 때문에` 결코 동등한 기회를 갖지 않는다는 얘기다. 당장 상황을 바꿔놓기 위하여 움직이는 대신에 그녀는 광대처럼 화장을 하고 주렁주렁 금고리를 매달고 자기들의 계모임으로 달려가 동등한 권리를 부르짖는다.

그런 상황은 바로 여성의 무관심, 우둔함, 가소로운 드레스, 자신을 파는 행위, 끝없는 임신(무엇보다도 남성에게 가하는 무참한 길들이기)으로 인한 것이므로 남성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그녀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이 책은 독일에서 백만 부 이상 팔린 것을 비롯해 전 세계 20개 국어로 번역 출간되어 커다란 논란을 빚었다.



[ 미디어 리뷰 ]
놀고 먹는데 여성해방을 왜 해?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혹독히 착취 당하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더 많은 여성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운동이란 반동적 운동이다.”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남성 쇼비니스트 한명 났군’하겠지만,발언의 주인공은 여자다. 에스테 빌라가 쓴 〈어리숙한 척,남자 부려먹기〉는 말랑말랑한 제목과는 달리,이미 상식이 된 여권주의 관념을 뒤집어 엎는 매우 논쟁적이고 도발적이며‘발칙한’글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남성이 경제력을 쥐고서 여성을 지배한다는 주장은 거짓이다.반대로 닭을 사육해 알을 빼먹듯,여성이 남성을 유혹해 지배하고 착취한다.그 유혹의 무기는 섹스와 칭찬이다.

남성의 성욕을 도발시키기 위해 여성은 공들여 외모를 가꾼다.자기 비하적인 이 상품 만들기를 여성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니까.여성해방운동은 좌초했다.무위도식할 특권으로부터의 해방을 여성 자신이 포기했기 때문이다.

--- 한겨레신문 고명섭 기자 (1997년 8월 5일 화요일)


남자들만 모르고 있는 여자들의 암호 몇 가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남자가 좋아」(귀찮은 일을 떠맡아 줄 방패막이가 필요해)「난 이런 일에 아주 서툴러」(힘든 일은 남자가 대신 해줘야 돼) 「함께 있으면 편안한 느낌을 줘」(절대 돈 문제로 신경쓰게 하지 않는 남자야) 「여성해방은 좀 그런 것 같아」(놀면서 남자를 부려먹는 게 훨씬 좋아) 「그를 사랑해」(그는 최고의 노동기계야)

인류의 역사는 어찌보면 여성들의 남성들에 대한 착취의 역사는 아니었을까. 여성들은 이런 암호를 주고받으면서 남성들의 뼈골을 우려낸 것은 아니었을까. 독일의 사회운동가이며 의사인 에스테 빌라. 그는 놀랍게도 여성의 몸으로 여성의 남성 길들이기, 여성의 남성 부려먹기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다.

치밀한 관찰과 날카로운 분석이 번득이는 그의 책 「어리숙한 척, 남성 부려먹기」(황금가지)는 독일에서만 1백만부가 팔렸다. 여자들은 짐짓 스스로를 비하시키면서 남자들에게 「남자다움」을 부추긴다. 이렇게 속삭인다. 유약하게 눈물을 보이지 말 것. 아무리 힘든 고통도 참아낼 것. 화려함이나 사치는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멀리할 것.

좋든 싫든 근면하게 일할 것. 여성에게 친절할 것. 「남자답게」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질 것. 이 얼마나 여성들에게 반갑고 고마운 것들인가. 이 모든 것을 떠맡을 의지도, 능력도 없는 여성들에게는.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시작되는 남자 길들이기는 성장하면서 성적인 자극에 의해 내면화되고 마침내 남성의 본성으로 굳어진다. 「세뇌」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성욕이 빠르고 강하다는 치명적인 육체적 약점 때문에 가능하다.

여성적이란 말은 「약한 성욕」을 의미하며 이는 「강한 성욕」을 지배하고 복종시킬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다. 동성연애의 경우에도 성욕이 약한 측은 상대방을 「남자처럼」 부려먹는다.

그래서 성욕이 약한 여성과 성욕이 강한 남성 사이의 섹스는 여자는 섹스를, 남자는 섹스+「권력」을 지불하는 불공정 거래다. 당연히 돈 많은 남자가 섹시한 남자보다 잘 팔린다. 남자의 이상형으로 통하는 「쾌활하고 활동적이며 추진력 있고 정열적인 남자」란 사실, 알고보면 중세의 건장한 노예의 덕목.

여성해방도 그 속과 겉은 이렇다. 「여성해방은 허구다. 여성해방이라는 게 뭔가. 그것은 남자라는 노예의 해방에 다름 아니다. 여성이라는 특권과 기득권의 박탈이다. 「성차별」이야말로 여성이 남자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발판. 왜 그걸 애써 타파하려 들겠는가. 여성이 해방을 원했다면 진작 이루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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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을 위한 책 -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
2006/03/17

《우리 행성에 남자들이 과다해져서 모든 여자가 남자를 셋씩 거느리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여자들은 틀림없이 자기의 세 남자한테서 아이 하나씩을 만들고 그 아이를 위해서 (즉 그녀를 위해서) 일하라고 요구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녀는 이 세 남자를 경쟁시켜 그들의 성취도를(그것을 통해 자신의 안락을) 무진장 향상시킬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여기 현대의 남녀관계와 결혼제도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완전히 뒤엎는 도발적인 견해가 있다. 요약하자면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을 먹여 살리도록 길들인 것은 바로 여성들이며, 여성들은 남성들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평생 집안에서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약하고 우둔해진다’는 것.

 

에스테 빌라는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결혼한 여성들은 ‘어수룩한 척하지만 사실 남자를 조종하고 착취하는 기생충 종족들’이며, 남성들은 ‘스스로 여성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라 믿지만 사실 여성들에게 길들여져 착취당하는 노예들’이고, 남자를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는 여성들은 ‘여성 해방의 논리에 빠져 오히려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험난한 팔자를 선택’했다고 비난한다.

 

저자는 여성이 남성을 굴종시키는 전략은 첫째로 외모를 치장하여 남성의 성욕을 부추기기, 둘째로 젊어서는 아이처럼 어리광이나 부리며 나약한 척하다 나이 들면 아이를 낳아 구실로 삼기, 셋째로 남성을 칭찬하는 동시에 여성 자신이 하는 일은 다 열등한 것이라며 비하하기, 넷째로 공갈치기(종교 교리 등을 통해 남자의 무의식에 선악관과 죄책감 주입), 다섯째로 ‘여성의 술수’라고도 불리는 거짓말하기라고 밝힌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직업을 갖기 전인 어리고 무능한 나이에 경제력 있는 남자와 결혼하여 무능을 영구화하는 여자들이야말로 가장 영리한 부류일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사는 유한마담들의 관점에서는 ‘억울한 여성의 역사’라는 것 자체가 허구이며 평생 시시포스처럼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오히려 남자들이다. 여자들에게는 자립할 것인지, 남자에게 의존할 것인지 둘 중에서 선택할 기회라도 있지만 남성들은 ‘부자유하고픈 욕망’ 때문에 오로지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남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여자인 엄마에게 의존하도록 길들여졌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여자에게 기대는 습성을 결코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마저도 ‘여성에게는 상업적 착취를 위한 구실, 남성에게는 노예로서의 생존에 붙이는 감성적인 알리바이’로 본다. 여성의 지성과 권력욕, 명예욕을 무시하는 듯한 이 책의 논리를 선뜻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모든 여성의 가슴 깊이에 숨겨진 ‘유한마담’의 꿈을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랑을 믿지 않는 영악한 친구들이 일찍이 유한마담이 되어 호강할 때, 평등한 사랑과 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여성들은 노처녀가 된다. 그런데도 남자들이 여전히 무능한 어린 여자들을 선호하는 걸 보면 저자의 견해가 틀린 건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이 책의 배후에 남성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에게 남자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야말로 남자들에게는 ‘지구의 종말’에 버금가는 위기가 될 테니까 말이다.

 

최재경 작가·프리챌 ‘노처녀통신’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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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테 빌라의 '어리숙한척, 남자부려먹기'라는 책 아닌가요?


세상에는 네 종류의 여성이 있다. 강한여성, 강한 척하는 여성, 약한 여성, 약한 척하는 여성. 강한 여성은 남성을 떠나가게하고, 강한 척하는 여성은 남성을 떠나고싶게 하며, 약한 여성은 남성을 떠나지도 못하게 하고, 약한 척하는 여성은 남성을 떠나기 싫게 한다. 하지만 여성의 겉만 보는 남성은 여성을 충분히 모르는 사람이며,여성의 속만 보는 남성은 여성을 전혀 모르는 남성이다.

 
여성의 자립에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여성은 어떤 여성일까? 에스테 빌라는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에서 약한 척하는 여성을 지목한다. 여성은 힘들여서 일하기 싫으니까 남성을 일류 노동기계로 이용할 뿐이다. 때문에 알고 보면 여성이 가해자이고 남성이 피해자이므로 지금까지의 여성 운동은 허구라는 것이다. 남성을 착취하기 위해 여성은 자발적이고도 후천적으로 사고력과 행동력을 없앤다. '당신 너무 잘하는군요' , '나는 왜 이렇게 바보일까요', '오늘 밤은 안 돼요'등이 남성을 길들이는 여성의 주문이다.때문에 '여성해방은 좀 그런것 같아'는 '놀면서 남성을 부려먹는 편이 좋아'가 된다. 남성 또한 자신을 백마 탄 기사로 만들기 위해 기꺼이 여성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에스테 빌라의 강점은 여성 해방이란 '특권'으로부터의 해방이기에 여성이 자신에게 제공했던 면죄부를 경계한다는 것이다.그녀는 여성의 내숭과 진면목을 잘 구분 못하는 남성과는 달리 동성이기에 더 잘 보이는 여성의 가면을 벗겨낸다. 그래서 이 책은 남성이 읽으면 기분나쁘고, 여성이 읽으면 더 기분나쁜 책이다. 책임지지 않는 사랑만큼 쉬운 것은 없다. 배풀기만 하면되기 때문이다. 책임지는 사랑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책은 여성을 위로하는 책이 아니라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다. 사랑보다 증오가 더 지독하듯이 자신감보다 수치심이 더 책임감을 느끼게 하니까.

 
세상에는 네 종류의 남성이 있다. 여성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속는 남성, 모르지만 속지 않는 남성, 알기 때문에 속지 않는 남성, 알고도 속아주는 남성. 여성 문제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남성은 알고도 속아주는 남성이다. 어리숙한 척 남성을 부려먹는 여성보다 더 고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남성에 대한 책은 남성을 잘 아는 남성이 써야 할 '미래의 책' 이다.

 
한겨레 문화 김미현의 독서일기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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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여성작가인 에스테 빌라는 이 책에서 페미니즘의 주장과는 달리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착취당한다고 역설한다. 즉, 남성은 착취당하는 노예이며, 여성은 남성을 길들이는 조련사라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에 대한 토론은 오늘날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여성운동으로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사회에 맞는 ‘새로운 남성’과 ‘새로운 여성’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의 신랄함과 혹독한 비판은 우리를 잠에서 깨우고 남녀의 영원한 불평등과 불균형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하여 준다.

 

저자 : 에스테 빌라, Esther Vilar

1935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독일 이민자의 딸로 출생했다. 독일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의사로 일했다.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다루는 단편작가 겸 희곡작가로 활동하며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로 단번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저서로는 『일부다처의 역사』『길들임의 끝』『결혼은 부도덕하다』등 다수가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희곡을 발표했다. 현재 런던, 바르셀로나, 더블린 등 여러 곳에 거주하고 있다.

 

옮긴이의 말

책 머리에

노예의 행복

남자는 무엇인가

여자는 무엇인가

여성의 시각

더 아름다운 성

우주는 남성적이다

여성의 어리석음이 자신을 신으로 만든다

길들이기

자기비하를 통해 길들이기

암호사전

여성의 메마른 감성

보상으로서의 섹스

여성의 리비도

허세를 통해 길들이기

상품화된 기도

스스로 길들기

포로인 아이들

여성의 악덕

이라는 가면

남자사냥터로서의 직장

소위

여성해방?

사랑은 무엇인가?

남성들이 받고 있는 가장 큰 불공평:

1. 남성은 병역의 의무가 있지만, 여성은 병역의 의무가 없다.

2. 남성은 전쟁터에 보내지나, 여성은 그렇지 않다.

3. 남성은 (짧은 수명 때문에 먼저 정년퇴직을 해야 하지만) 여성보다 늦게 정년퇴직을 한다.

4. 남성은 그들의 번식에 전혀 영향을 줄 수가 없다(그들에게는 피임약도 없거니와 임신 중절수술도 없다).

5. 남성은 여성을 부양하지만, 여성은 남성을 부양하는 일이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간혹 일시적일 뿐이다.

6. 남성은 평생 일을 하지만, 여성은 일시적으로 일을 하던지 또는 전혀 하지 않는다.

7. 남성은 평생 일을 하고 여성은 임시로나 또는 전혀 일을 않지만, 남성은 여성보다 가난하다.

8. 남성은 그들의 아이들을 “빌리지만”, 여성은 아이들을 맡을 수가 있다 (남자가 일하는 이유에서 멀어질 때, 아이들은 엄마에게 돌아간다).

<사랑>은 여성에게는 권력을 주고, 남성에게는 굴종을 준다.

여성에게 <사랑>은 상업적 착취를 위한 구실이지만, 남성에게 <사랑>은 노예로서의 생존에 붙이는 감성적 알리바이이다. <사랑 때문에> 여성은 자기한테 이득이 돌아오는 행동을 하고, 남성은 스스로 손해 보는 짓을 한다. 결혼하고 난 뒤 여성은 <사랑 때문에> 더 이상 일하지 않고, 남성은 <사랑 때문에> 두 사람 몫을 일한다. <사랑>은 그 둘 모두에게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그러나 한쪽은 승리를 통해, 다른 한쪽은 패배를 통해 생존한다.

--- 본문 중에서

 

이책을 이제야 읽게된것 만으로도 나는 잘못 살았네 내용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90802

멋진 이론이자, 탄복할 만한 논리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정확하고 탁월한 묘사가 있을 수 있는지....... 여자가 아주아주 머리를 쓸일이 전혀 없게끔 자기들을 발전시켜 왔다는 논리에 탄복하고 말았다.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현실파악이 가능 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얼마전 여자가 20대에 하지 않으면........머 그런 정확한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그런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너무나 막연 했는데 이번에 이책을 읽고는 명확하고 날카로운 논리에 탄복하고 말았다. 나는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스러운 인생을 살아 왔는지........... 늘 고민되던 모든게 일시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자가 자신을 가꾸는 일에 게으른것은 바로 먹고 살기 싫다는 소리이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을때 머릿속을 누가 한대 칵 때려주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여자는 논리적이고 섹쉬한 여자는 옳은 것이고 예쁜여자는 착한것이고 날씬한 여자는 똑똑한 것이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이렇게 쉬운 세상을 당췌가 어렵게만 살아온 이유는 내가 게을러서 피부가꾸는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고, 내가 몸매를 관리하는데 소홀해서 낙오된 이유였다니........믿어지지가 않는다. 내가 여자친구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은 그들이 더이상 나를 경계할 이유가 없기때문에 나와 동맹의 관계를 맷을 필요가 없어서 이고 남자들에게 영원한 우정을 맹세받는 이유는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성격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었다니.....세상에 그렇게 간단하고 명쾌한 이유를 모르고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살았다니.......... 믿을 수 없다. ㅎㅎㅎ 이 작가의 탁월한, 명쾌한 이론은 어떻게 구성 되었을까? 어떻게 이런걸 알아 버렸지? 나는 이나이 먹도록 몰랐는데........... 참 멋진 책이다. 다시 태어나면 난 이책을 십대에 읽고 싶다. 다른 여자들 모두 10대에 깨닿는 이렇게 간단한 이론을 삼십대가 이렇게 많이 지나고야 알면 어쩌라는 건지...... 차암 나자신의 우둔함에 일단 건배.............. 그리고 이런것을 내게 절대로 알려주지 않은 내 주변의 모든 다른 여자들의 영악스러움에 다시한번 건배........... 이제부터라도 약게 살아야 겠다. 이책을 만난 이 2007년 1월을 절대로 잊지않고 기억하는 것도 명심해야 겠지??? 한가지 명언을 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아름답고 섹시하지 않은 여자 먹지도 말라.............ㅎㅎㅎ 역설적이라고 느꼇으나 분명한고 재미있는 논리임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 내 딸에게 꼭 남겨주어야 할 책이다.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 남성은 착취당했다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612858

저는 대학 졸업하고 집에서 놀고먹는 여자들을 비난합니다. 일하기 싫어서 집에서 놀고먹는다는건 대학 졸업장을 결혼하기 위해 받았다는 증거밖에 안되거든요. 요즘은 맞벌이를 많이 합니다만 아직도 결혼하면 집에서 놀고먹으려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왜 남자들은 죽어라 일을 해야 하고, 집에 와서 가사도 해야 할까요? 물론 맞벌이부부라면 가사도 반반 나눠야 옳지만 맞벌이가 아니라면 가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것 아닐까요? 남자는 퇴근하고 집에오면 쉬지만 여자는 하루종일 일한다고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요즘 기계가 얼마나 좋아졌는데 하루종일 일하지는 않죠. 직장은 거래처,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납니다. 가사는 그런것도 없잖아요. 저자는 남자의 수명이 여자보다 짧은 이유는 스트레스를 남자가 더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일찍 죽습니다.

 

저는 남성우월주의자는 아닙니다. 저는 남녀평등주의자 입니다. 여성으로 태어나 받는 혜택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런데도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왔습니다. 현 시대는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는 시대라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가깝게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남성들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국방의 의무 입니다. 얼마나 불공평 한지요. 남녀가 평등해 지려면 국방의 의무부터 평등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남자가 손해보는 것들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1. 남성은 병역의무가 있지만 여성은 병역의무가 없다.

2. 남성은 전쟁터에 보내지나 여성은 그렇지 않다.

3. 남성은 여성보다 (짧은 수명 때문에 여성보다 먼저 정년 퇴직을 해야 바람직하지만) 늦게 정년퇴직을 한다.

4. 남성은 그들의 번식에 전혀 영향을 줄 수가 없다.

5. 남성은 여성을 부양하지만 여성은 남성을 부양하는 일이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간혹 일시적일 뿐이다.

6. 남성은 평생 일을 하지만 여성은 일시적으로 일을 하던지 또는 전혀 하지 않는다.

7. 남성은 평생 일을 하고 여성은 임시로나 또는 전혀 일을 않지만, 남성은 여성보다 가난하다.

8. 남성은 그들의 아이들을 <빌리지만>, 여성은 아이를 맡을 수가 있다.

 

3번과 8번은 이해가 안되지만 나머지는 이해가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남성우월주의자는 아닙니다. 저는 남녀평등주의자 입니다. 다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는 남녀평등주의자라는 것입니다. 저는 데이트 할 때에도 데이트 비용을 제가 다 부담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 제가 내면 한 번은 여자가 내게 했습니다. 남녀는 평등하니까요. 집까지 바래다 주는 일도 항상 제가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은 제가 하고, 한 번은 여자가 하고.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도 가사 50%씩 부담, 돈버는 것도 50%씩 부담을 하자고 했을 정도니까요. 꼭 남자가 돈을 벌어야 할 필요가 있나요?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남녀평등이 절대 아니죠. 나중에 아기 낳으면 육아도 50%씩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남녀평등주의자 입니다. 여자가 무거운거 들어달라고 하면 잘 들어줍니다. 이건 육체적인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죠. 무겁고, 더럽고, 힘든건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녀의 육체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남녀의 육체적 정신적 차이를 인정하며 평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역의무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자는 육체적으로 여자보다 나으니까 군대에 가고, 여자는 대체복무 또는 세금부담으로 남녀가 평등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이와 같이 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여성들은 우리나라가 여성들이 불평등하다고 말하는데요,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우리나라만큼 남성들이 차별받는 나라도 별로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에 맞지도 않는 주장을 펼치며 남녀평등을 말하는 여성들을 보면 기가 찹니다. 남성과 여성은 생긴거 부터 틀리고 생각하는 것도 틀립니다. 남성은 화성인이고, 여성은 금성인입니다. 어떻게 같아질 수 있을까요? 저자의 말대로 여성들은 이미 남성들에게서 많은 것을 착취하면서도 더 많은 것을 착취하려고 합니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남자들에게서 사랑받지 못한 여성들이 남녀평등을 주장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녀들에겐 남성에게 받을게 없거든요.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논리적입니다. 반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빈틈이 없습니다. 이 책이 1971년에 이미 출간되었던 책이니 저자는 그 후로도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주장들을 뒷받침 할 만한 연구를 했을까요? 평생을 했을 겁니다. 실제로 저자의 주장은 빈틈이 없고, 대부분 모두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남성해방운동이라도 해야 하느냐? 제 생각은 '그렇다' 입니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게 하고, 남성이라고 해서 꼭 돈을 벌어야 하는게 아니라 여성이 돈벌고 남성이 가사를 해도 되고, 남성이 육아를 해도 되는 해방운동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동안 받은 불평등을 똑같이 만들자고 하면 이에 찬성할 여성들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찬성할 남성들도 많지는 않겠지만 여성해방운동가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반대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남성으로 태어난게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는게 너무 힘듭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그래도 그만두지도 못하고 출근을 해야 합니다. 군대 2년 세월 날렸죠, 그것도 그냥 날린것도 아닙니다. 고생이란 고생 다 해가며 2년 보낸 거죠. 여름엔 태어나 처음으로 온몸에 땀띠로 고생, 겨울엔 뼈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로 인한 동상, 고참들의 구타와 얼차려, 수면부족 등 돈 줄테니 두 번 가라고 해도 절대 가기 싫은 곳이 군대니까요.

 

여성해방운동가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평등하게 사세요. 과연 평등하게 살 수 있을까요? 제 생각은 '절대 아니오' 입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다릅니다. 절대 같아질 수 없어요. 제가 만약 여자라면 여성해방운동가들을 비난할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살기 좋은데 왜 바꿔?

 

이 책을 읽고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누구 앞에서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단순히 남자와 여자는 다르기 때문에 평등해 질 수 없다고 말했었는데, 이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준 저자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부정하지 못하는 책 내용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77494

처음에 책의 제목만 보고 내용을 짐작하길 여성상위 입장에서 기술된 내용일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내 짐작이 빗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은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는 나로서는 여성을 이렇게 묘사했다는 것이 정말 떨떠름 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무조건 부정할 수 만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성으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부분을 이책에서는 신랄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기술했기 때문이다. 책의 머릿부분 헌정문의 작가의 말을 다시한번 읽어 봤다. "이 책을 이곳에서 언급되지 않은 이들에게 헌정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소수의 남자에게, 자기를 팔지 않는 소수의 여자에게, 그리고 너무 늙었고, 너무 못났고, 또는 병들었기에 아무 시장가치가 없는 행복한 이들에게,,," 그렇다. 책은 그 안에서 언급되지 않는 이들에게 바쳐지는 책인 것이다. 길들여진 노예를 필요치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가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길들여진 노예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주위의 여자들중엔 남자 잘 만나면 팔자 고친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상당수 있다. 아니, 상당수가 아니라 대부분이 아닌가 싶다. "야당 총수" 와 "영부인" 중 누가 더 행복해 보이는가? 당신이라면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삶이 외로운 총수의 자리를 택하겠는가, 아니면 대통령인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를 키우며 주변 사람들의 머리조아림을 받는 영부인을 택하겠는가? 이 책은 남자의 사회적 위치에 편승하고자 하는 세상의 모든 신데렐라를 역설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 또한 겉으론 사회적인 자아성취를 외치지만 남편의 부와 지위가 확보되어 하루에 한줄의 글도 읽지 않아도 험이 되지 않는 아내의 자리를 꿈꾼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가끔은 넉두리로 꿈꾸었던 생활을 정신번쩍들게 꼬집어준 이 책에 감히 최고의 평점을 주고 싶다. 그리고 앙증맞은 디자인으로 나를 책의 내용을 오해하게 한 책의 겉모양에게도,,, 끝으로 국민일보에 소개된 책의 기사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친다. " 이 책은 현대 남녀관계와 결혼제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완전히 뒤집는 도발적 견해들고 가득하다. 독일 여성작가인 에스테 빌라는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착취당한다고 역설한다. 남성은 노예이며 여성은 남성을 길들이는 조련사라는 것이다. 그 논리는 이렇다. 사랑은 여성에게 권력을 주고 남성에게는 굴종을 안긴다. 여성에게 사랑은 상업적 착취를 위한 구실이지만 남성에게는 노예로서 생존하려는 감성적 알리바이다. 사랑 때문에 여성은 자기한테 이득이 돌아오는 행동을 하고 남성은 스스로 손해보는 짓을 한다. 사랑은 둘 모두에게 생존을 위한 투쟁이지만 한쪽은 승리를 통해, 다른 한쪽은 패배를 통해 생존한다. 저자의 말을 100% 수긍하기는 힘들다. 일부 논리적 비약도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남녀 갈등의 원인을 색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참신한 시각은 톡쏘는 탄산음료 같은 청량감을 준다." 덧글: 기자는 남자임에 틀림없다!!

 

남자가 노예라니?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608723

'1971년도에 처음 출간된 책이라지만 어떻게 이렇게 요즘 세태를 제대로 찝어내지?' 란 생각이 든다. 처음엔 나도 무지 충격을 받아 욕을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너무나 직설적으로 나에게 공격을 가해오므로 피할 곳이 없어서 으르렁대며 "어디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끝까지 읽었다. 길들여진다는 것보다 솔직히 길들이는 편이 좋아 제목에 끌렸었다. "길들이는 여자들" 얼마나 좋게 들리나? 하지만 이런 반전이 있을줄이야. 온통 여자에 대한 단점투성이의 단어들뿐이다. 이성이라고는 없는 그저 남자를 꼬시기 위해 화려하게 화장하고 꾸밀줄만 알고 도통 지식을 쌓을 줄 모르는 무식하고 돈만 아는 창녀.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여자의 존재이다.

여자를 인류(남성, 여성으로 분류된)에 넣는 것조차 부끄러워 하며 평생을 안락하게 보내기 위해 남자를 그저 돈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길들이는 여자들을 정말 신랄하게 비판한다. 작가는 이 책을 내고 돌은 안맞았는지 걱정스러워진다. 지금도 충격인데 1971년도에는 말해 무엇하랴. 아마 요즘은 여자들도 사회에 나가서 큰 성공을 거두는 예가 많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이들이 늘어가는바 더 충격일지 모르겠다.

"여성은 일시적으로 일을 하던지 또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부정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소수이지만 활발하게 사회에서 제 몫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라며 반박을 해 보지만 나 자신이 결혼을 하고 집에 칩거하며 남성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가족"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당연시 여기게 만드는 길들이기를 하고 있어 감히 입을 뗼수조차 없다. 정말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가족임을 앞세워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여성들이 과연 젊음을 내세울 수 없을때 남성들이 자신을 책임지고 부양하게 만들려고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 세계의 중심이 남성들로 인해 돌아가고 있지만 여성들을 위해 발명하고 돈을 벌며 그 속에서 길들여지는 남성들에게 "권고하느니 제발 벗어나라"고 종용하는 자체는 어찌 바라봐야 하는가. 정말 남자는 노예인 것인가?

아이의 양육에 대해서도 가히 부정적이다. 남자아이는 어릴때부터 길들여지고 여자아이는 어릴때부터 창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몇시간을 화장하는데 공을 들이고 생물학이나 지구과학 같은 과목을 능한시 그저 단순한 과목만 열심히 하는 여자아이들이고 보면 이미 그 죄는 엄마인 여성에게 돌아간다. 역시 "세상을 움직이는건 남성이지만 그 남성을 낳은 사람은 여자다?" 이 말과 책 내용이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분명 읽는 사람 누구나 혼란스러울 것이다. 아니 여성혐오증이 있는 사람은 쾌재를 부르며 읽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에 이르러서는 여성혐오증이 있는 이 남성도 어머니는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기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일지도 모른다.

진정 여성해방을 여자들이 원하지 않을까? 이 안락한 가정의 테두리안에 안주하기 위해서? 아니. 가족은 생명을 잉태하고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이다.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여성들은 사회에 맞서 나갈수 있다. 그저 남성들에게 기대어 살지 않는다. "어머니는 강하다고 하지 않던가?" 여성의 권위가 신장되는 요즘이다. 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남편 잘 만나는 것이 여자의 행복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과 다르다. 자신의 이름이 사회에 불리어지길 원하고 아이에게 떳떳한 부모이고 싶어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씌어져 수정해야 될 것 같다. 오롯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기엔 내가 여성이라는 것이 너무 슬퍼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고 행복을 추구한다.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귀속되어 편안한 삶과 행복을 보장받는 대가로 돈을 벌어다 주고 여성을 위해 인생을 받친들 어떠랴.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나를 닮은 자식들과 같이 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리라. 어찌 이것을 노예의 삶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머리가 무거워지는 책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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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책이 있냐는 친구의 한숨섞인 말, 악평을 서슴지 않는 리뷰어들...이 모든 상황 속에서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작가가 마치 독자들을 이리 쥐고, 저리 쥐고, 악동같이 일부러 논쟁점을 만드는 장난꾸러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리고 작가가 케이크를 굽고, 오븐에 고기를 굽고, 깨끗이 세탁된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는 행복감을 느끼는 여자들에 대해 강한 질투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과연 이 책이 출간된 1971년의 상황은 이러했을까? 머리말에 보면 그 당시에도 많은 항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이 아직까지도 독자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속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내용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나도 이 작가가 말하는 모든 것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이출산에 대한 시각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직장을 가진 여성에 대한 시각 또한 이해가 안되었다. 그러나 남자를 노예로 삼는 여자라는 표현에 있어서는내 주위에도 이런 부류가 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읽기도 하였다. 제3자가 바라본 그 커플의 남자는 분명 노예(?) 아니 머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더라.... 여성은 남성을 착취한다. 남자는 아내와 아내의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존재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없으면 안되는 길들여지는 존재로 살아간다. 여성은 혼자서 살아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자들을 구하게 된다. 결혼하고 난 여성은 <사랑 때문에> 더 이상 일하지 않고, 남성은 <사랑 때문에> 두 사람 몫을 일한다. 하하하 어쩜 작가는 논쟁을 즐기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어쩜 여성을 이리도 무개념의 인간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었는지...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여자가 남자보다 똑똑하다는 사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머리가 무거운 건 왜일까?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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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 대하여 여자들을 깍아내리는듯한 책의 내용

그러한 책의 저자가 여성이라니 더욱 놀랍다

남자가 착취당한다고는 하였지만 글을 읽는 내내

여자의 한 단면만을 너무 주장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여자가 무슨 행동을 해도 그 행동은

남자들을 이용하기 위함이라는데 그렇다면 세상

어느 남자가 여자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당장 주변에

있는 여자부터 의심하게 될 것이다 여성에 대한 그리고

남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좋아 보이나 너무

일방적인 것 같아 그다지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30여년 전부터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과연... 여자들은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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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뭐랄까. 수많은 일반화의 오류속에서 현재의 삶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첫번째 질문 여자들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책의 내용을 빌어 표현하자면 여자들의 행복의 관건은 그들의 편안한 일상에 있다. 뜨개질을 하고 차를 마시고 쿠키를 굽거나 자신을 더 이쁘게 치장하는 것들이 여자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과연 이런 것들로 그들은 행복을 얻는 것일까? 심지어 남자들의 이목보다는 같은 여자들로부터 높은 칭찬을 받을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얼핏 같은 여자들끼리 주고 받는 대화에서 그러한 뉘앙스의 대화들이 오고가는 것을 엿들은 적이 있긴 하다. 두번째 질문 여자들은 진정 남자를 의도적으로 길들이고 있는가? 이 부분에서는 문화나 관습과 같은 개념의 접목이 필요했다. 여자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남자를 직업 전선에 보내고 남자의 노예근성을 불사르도록 길들이고 있다고 말한다. 문화적으로 농경 사회에서 힘들고 위험한 바깥일들은 남자의 몫이고 그렇지 않은 일들은 여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힘이 들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 여자들이 편안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진정 의도한 것인가? 용맹스러운 전사의 모습에 환호하는 여성들은 다 가식이었단 말인가? 세번째 질문 아이들은 진정 여자들의 행복을 위한 도구 인가? 여자들이 나이를 먹고 자신의 매력으로 더이상 남자를 길들일 수 없을때를 대비하여 보험과 같은 형태로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고 이야기 한다. 과연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 일까? 내가 가진 짧은 지식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종족의 보존이라는 개념과 유전자의 전달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하지만 책에서는 여자들은 그러한 목적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영위하기 위해 아이를 낳는 다고 이야기 한다. 과연? 네번째 질문 여성 평등은 단지 선택 받지 못한 여성들이 외치는 구호인가? 여성 인권에 대한 평등을 주장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기존의 여성적인 삶을 실패한, 이른바 미적 기준으로 남자에게 선택 받지 못한 여성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간디가 과연 미적 기준으로 상위에 속하는 여성이었다면 그의 혁명은 좀 더 대단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는 책이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조금은 내 마음의 동요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의 이론일뿐 정확한 명제는 아닐것이다. 이론이나 가설로서는 설득력도 떨어지고 예시도 편협하지만 그래도 한번쯤 ''과연?''이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재미있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자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무서운 여자들...하지만 사랑스럽고 귀엽다.. 난 이미 길들여진건가?

 

[인상깊은구절]

P.105 여자들의 거짓 눈물에 대한 대목 <감정의 빈곤>은 또한 여성이 최대한으로 남성의 감성을 억압하고, 그와 동시에 그녀 자신은 감정이 풍부하고 섬세하다는 평판을 얻는다는 점에서 또 다시 확인 된다. 눈물주머니는 방광처럼 훈련에 의해 의지를 따르게끔 되어 있는 조그만 액체 저장기다. 성인은 눈물을 참아서 침대를 적시지 않을 수 있다. 남자아이는 그렇게 길들여진다.(다시금 여성을 비하함으로써-<사내가 울면 못써>,<넌 계집애가 아니야!>. 여자아이는 그런 금지를 받지 않고, 곧 그 이점을 이용하기를 배운다. 여자가 우는 것을 남자가 볼 때, 액체 저장기를 제어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P.150 소비 주체는 여자! 그가 오늘 이웃의 아내에게 아첨을 해서 거실 카페트를 구입하게 하였다면 내일은 그 여자의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온수 욕조를 구입하게 만들리라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 남자가 무슨 재주로 아내가 산 카페트 값을 지불 할 수 있겠는가? P.200 소위 해방된 여자 1) 그녀는 (사고 싶은 잡동사니에 드는 돈을 뒷받침할 만한 돈을 벌지 못하는)<실패자>와 결혼해 버렸다. 2)생물학적 원인으로 자식을 낳지 못했다.(어떤 남자들은 열정이 식은 후에 여자를 부양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3)못생겼다. 4)그녀는 해방된 여자다. 5)그녀는 특정한 직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그래서 처음부터 노예와 아이들을 포기했다.) P.236 오직 여성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오직 여성만이 이 길들임과 착취의 악순환을 끝장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렇게 할 이성적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감성에 호소할 희망 또한 전혀 없는 바, 냉정하며 어떤 동정심도 갖고 있지 않은 존재가 바로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항상 다시 이 유치함에, 이 원시성에, 이 우둔한 <여자다움>에 함몰 될 것이고, 훌륭한 몽상가인 남성은 그들의 몽상으로부터 도저희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운명을 타고난 남성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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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노예고 여자는 조련사라고? 남자인 나에게 주어진 한권의 책.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 그럼 나는 여성에게 길들여지는 존재라는 건가... 보통 책을 읽으면 하루나 이틀 사이에 다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흐르게 만들어 주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남성과 여성의 운명. 책을 읽고 나서 내 머릿속에 기억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그저 남성의 여성을 위해 존재하는 노예 같은 존재라는 것. 그리고 여성은 남성을 자신의 위한 존재로 만들어서 평생 이용하는 존재라는 것. 남성의 길들임은 여성만이 끝장낼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 그러나 여성들은 절대 남성 길들임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러한 이유로 여성이라는 존재가 남성을 길들이지 않아야 할 이성적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표현하는데... 여성이란 존재는 감성에 호소할 희망 또한 전혀 없고, 냉정하며 어떤 동정심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저자. 위와 같은 사유로 이세상은 항상 다시 이 유치함에, 이 원시성에 이 우둔한 <아름다움>에 함몰될 것이고, 훌륭한 몽상가인 남성은 그들의 몽상으로부터 도저히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를 짓는 저자. 당신은 위에서 이야기한 저자의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당혹함에 휩싸이는 나.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깨운 함이 없는 책. 남성이라는 존재감이 허무함을 느끼게 만드는 매개체가 바로 이 책인 것 같다. 출간 즉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여성과 남성의 갈등 파헤치기라는 질문이 어색할 만큼 더 큰 갈등만 내게 안겨준 책이 당신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시다면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을 선택하여 보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강한 충격을 가져다준 책을 먼 훗날 다시 볼 수 있겠금(결혼을 하고 30대 40대가 되면 받아 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도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서고 한 쪽 켠에 꽂아두며 마무리지어본다.

 

 

출처 : 텐인텐[10년 10억 모으기]
글쓴이 : 스메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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