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과학자들이 극찬한 이휘소 박사
"내밑에 아인슈타인도 있었고 이휘소도 있었지만 아인슈타인보다 이휘소가 더 뛰어났다"
-전 미국 프린스턴연구소장 오펜하이머-
"이휘소에게는 1960년대 중반에 이미 노벨상을 주어야 했다"
-양진녕( 1957년 노벨상 수상자) -
" 그와 같이 6개월간 생활하면서 나는 도리어 이휘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겔만 (1969년 노벨상 수상자) -
"이휘소는 현대물리학을 10여년 앞당긴 천재이다. 이휘소가 있어야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부끄럽다. 1분간 그를 생각하는 묵념의 시간을 갖기를 제안한다."-살람(1979년 노벨상 수상소감 중에서) -
"내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벤자민 리의 공이었다. "
- 스티븐 와인버그 (197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새로운 이론적 요소, 실험결과들... 벤자민 리는 그 중심에 있었다."
- 헤라르뒤스 토프투 (199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이휘소 박사는 세계 물리학계의 슈퍼스타였다. 한국 사람 중에서 그런 사람은 물리, 화학, 생물을 다 합쳐서 앞으로 몇 십년간, 몇 백년간 안 나올 것이다."
- 김진의 (서울대 교수)
"1977년 6월에 있었던 그의 비극적인 사망은 전 세계 과학계에 타격을 입혔다."
- 슈럭 (스토니브룩 대학 물리학과 교수)
이휘소는 우리나라 출생 물리학자 중 가장 뛰어났고 노벨물리학상 수상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과학자였다.
그가 제시한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는 소립자 물리학의 표준모형을 확립시켰으며 그의 연구결과는 다른 여러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와인버그, 살람(1979년), 토프트, 벨트만(1999년), 그로쓰, 윌첵, 폴리터(2004년) 등이 노벨상을 수상하게 했다.
1974년 그는 참 쿼크의 존재와 관현해 search for charm이라는 획기적 논문을 발표하여 참 쿼크가 존재할 경우 이들이 결합할 때 나타나는 입자들의 성질을 규명했고 그해 11월 제이/프사이 입자를 발견한 리히터와 팅이 1976년 노벨상을 받게 했다.
-국립 과천과학관
당시 이론물리학자들은 이 20대의 이휘소 박사의 논문을 침대 곁에까지 두고 탐독했다는 일화까지 나올 정도이니 이휘소 박사의 천재성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토프트도 이휘소 박사의 논문에서 노벨상 수상 연구를 착상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서울대 물리학 김제완 교수는 74년 박사가 한국에 왔을 때 “내가 거의 2주일에 걸쳐 계산한 결과를 이 박사는 흑판에서 단 5분 만에 계산했다”면서 거의 이휘소 박사의 수학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휘소박사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교 2학년 재학중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수석 합격?화공과 2학년 재학중 도미, 마이야미대학 물리과로 편입,피츠퍽대학 석사, 펜실바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27세에 프린스턴연구소 위원, 그 당시 미국에서 10명에 꼽히는 물리학자가 되었고,
28세에 뉴욕주립대학 정교수, 30세에 시카고대학 교수겸 페르미연구소 물리부장으로 취임, 명실공히 세계 핵물리학자중 1인자로 부상했다
74년에 방한, 서울대에 AID 차관에 의한 과학연구소를 설립해 주었으며,77년 주한미군 철수가 시간문제로 대두되자 조국에 장거리 유도탄과 핵무기개발원리를 제공하고 같은 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962년 국제 고에너지회의에 미국대표로 참석할 정도의 이휘소박사는
미국을 대표하는 핵 과학자 10명속에 끼이게 되었다.외국인으로 거기에 든 예는 과거에 없었고,?아직 국적이 "한국인"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낀 것은 특별한 예외에 속한 것이었다.
국제 고에너지회의는 이탈리아의 프리에스트에서 7월 15일부터 45일간 계속되었는데?미국의 핵 과학자 10명이 거의 행사를 주도하였다.
특히 이휘소가 프리스톤 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 4개가 회의의 중심 과제가 되었다.회의에 참석한 백 여명의 학자중 이휘소가 가장 젊었다.
당시 이휘소는 핵의 이론과 소립자의 단위와 그들의 생명의 기간,?그리고 그 생명이 다른 것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강연을 했고,세계석학전원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박수가 끝나자 이휘소는...
"저는 미국 국민이 아직 아닙니다.저는 한국이라는 가난하고 분단된 국가에서 태어나 미국에 유학중인 사람입니다.?제가 국적을 언제인가 옮길 줄은 모릅니다만, 핵을 만들고 핵을 이용하는 것은?일부 강대국의 전유물이 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지금 핵을 저개발국가의 복지에도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핵을 전쟁무기로 생각하는 인식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휘소의 이 말에 모두 또 감격했다.회의에 참석한 전원이 기립박수를 하였다.?기립박수를 받은 사람은 젊은 이휘소 한 사람뿐이었다.?당시 국내신문에도 이휘소가 국제물리회의에 미국대표로?참석한 기사가 일제히 나왔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보는 박사학위 시험결과도 전체 평균 93점이었고,?차점 합격자의 평균 71점인 것을 계산한다면 엄청난 차이이다.펜실베니아대학 역사 이래 처음있는 일이었고,더구나 물리과 지망생 중 미국 전대학 역사에도 없는 점수라고 말한다.
학창시절, 김진명씨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일부를 옮겨 실었습니다.
항간에는 이휘소 박사의 죽음에 미국의 배후 음모론을 말하기도 하고,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휘소 박사는 오히려 박정희의 유신정권에 반대하여 사후 이휘소 박사의 부인이 김진명씨와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는 얘기도 들리고..
아무튼 천재는 따로 있나 봅니다. 한국인인게 자랑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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