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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초봉45만원에서 연봉1억으로 39~40 (성공의기본 : 참을성)

라 울 선생님 2007. 5. 11. 11:53


오늘은 주변의 형제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 집에는 동생 말고 형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형님이라는 분은 늘 하는 것 마다 실패를 보았습니다.



동생이라는 분은 늘 하는 것 마다 승승장구를 하였구요.

















그래서 그 두 형제를 연구하면 성공이 무엇이다.



부자로 가기 위한 조건이 무엇이다가 나올 것 같아서



연구목표를 설정하고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이 두 분의 가족사는 형제이기 때문에 누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누가 나쁜 집안에서 태어났다 라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똑 같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똑 같은 조건 하에 자라났기 때문이죠.

















하지만 형이라는 분은 현재 어렵게 살고



동생이라는 분은 현재 잘 살고 있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잘살고 잘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 두 분을 만나 뵙고 어릴 적 아주 작은 동기를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릴 적부터 “참을 수 있느냐? 참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 한 예로 어릴 적 엄마에게서 용돈을 받아서 과자를 사 먹을 때



형은 자신의 몫을 빨리 먹고 동생 것 까지 뺏어 먹으려고 허겁지겁 먹는데 비하여



동생은 자신의 몫조차도 아껴서 다음에 먹기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작은 사실을 발견하였습



니다.















아무것도 아닌 결과 이겠지만,



내가 현재 먹고 싶은 것을 당장 먹어 치우는 것은



1. 미래에 대한 준비가 결여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2. 현재의 안위에 만족하기 위하여 다음을 모른다는 말이며



3. 현재의 동물적 감각에 의하여 앞으로서의 이성적 감각을 묵살한다는 것이며



4. 현재의 몸 둥아리와 혓바닥을 위하여 저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하며



5. 현재의 작은 배부름으로 인하여 앞으로도 계속 배 부를 것이다 는 막연함만 키우며



6. 미래에 대한 준비성이 없으므로 저축보다는 소비에 집중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동생의 경우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이 과자를 급하게 빨리 다 먹는다면 입안의 즐거움 조차도 단시간에 끝날 것이라는 것



이라는 유아적 발상이었겠지만, 지금에 와서 본다면



1. 지금 먹고 싶은 것은 참음으로써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고



2. 현재의 만족 보다는 다음의 만족을 위해 참을 줄 아는 본성을 깨쳤으며



3. 현재의 동물적감각보다는 미래의 이성적감각을 지켰으며



4. 현재의 달콤함 보다는 장기간의 달콤함을 원하는 마음을 배웠으며



5. 현재의 만족감보다는 미래의 만족을 위하여 준비하는 마음을 배웠으며



6. 미래의 준비를 위하여 현재 소비에 치중하기 보다는 저축에 치중하는 성향을 깨치는



것입니다.





















특히 형의 경우에 자신의 것을 다 먹고 동생의 것까지 뺏어 먹으려는 욕망은



힘들이지 않고 남의 것 까지 뺏어 먹겠다는 나쁜 영향이 있었다 라고 봐야 합니다.



이러한 근성은 결국 어른이 되었어도 본인이 잘 살지 못하면 가족들에게 손을 벌려서



목숨을 연명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파이를 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파이를 먹고 싶다고 홀라 당 다 먹어 치우면 순간의 즐거움과 배부름은 있겠지만



아껴먹거나 내일 것 까지 남겨준 아이하고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현재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게 잘 살지 못하는 사람들과 잘사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재밌 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제가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그 사람들은 벌써 식사를 다 마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우는 너무 허겁지겁하게 먹는 것 같아서 보기에도 안 쓰러 울 정도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후배랑 같이 점심을 먹는데 음식이 나오자 마자 말 한마디로 없이 식사를 하기 시작



하여 5분 안에 식사를 다 한 것 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부자가 되기 위한 자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식사를 다 한 후 물을 찾는



그 후배에게 버럭 뭐라고 하였습니다.















“ 이 친구야. 무슨 밥을 그렇게나 빨리 먹냐. 나는 조용하게 너랑 식사를 하고 싶었는데



무슨 말 한마디도 아니하고 밥만 먹냐.



앞으로 너가 성공하고 싶다면 이러한 식사 습관은 당장 버려



세상에 어떤 누가 너처럼 게걸스럽게 밥 먹는 사람 있는 줄 알어”



“……………….”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딘다고 하였는데…



사실 밥 다 먹었으니까 뭐라고 하였습니다.





















아무튼 가난한 사람들이나 지금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과의 식사는 그렇게 유쾌한 식사가



아닙니다. 누가누가 더 빨리 먹나 시합도 아니고….





문득문득 저 또한 배가 고파서 밥을 허겁지겁 먹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므로



또한 허겁지겁 먹는 사람들 치고 부자들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천천히 먹으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식사시간을 1시간 30분 동안 가지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입안에 들어있는 음식물의 미각과 향을 음미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식사시간이 길어질 것



입니다.























부자들과의 식사를 같이 하다 보면



식사하는 시간 반, 이야기 하는 시간 반이 지나갑니다.



부자들과의 식사는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득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기 때문이며



또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고 인연의 끈을 넓혀 나가는



나의 사교의 장이 되기 때문에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식사시간이 보통 40분 이상이 들어가며 후식이라도 나오면 1시간 가까이 식사를



하는 것이지요.























뭐든지 그렇습니다.





허겁지겁 하는 일 치도 똑바로 떨어지는 것 못 보았습니다.



꼼꼼하게 차분하게 하는 일치도 야무지지 않는 일 못 보았습니다.



설령 통계상 작은 차이는 발생하겠지만 그러한 차이는 차이 일뿐이며



더 나아가기 위한 실패냐?



더 망가지기 위한 성공이냐의 차이 일 뿐입니다.



























성공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차분하게 생각하시고,



차분하게 식사하시고



차분하게 매사를 다스리기 바랍니다.



빈 깡통은 딸랑거리는 소리만 클 뿐 실속은 없습니다.



속 찬 깡통은 딸랑거리지는 못하지만 알게 모르게 실속이 있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과자를 먹는 것도,



성공을 하고 싶은 마음도



결국은 모두가 다 욕망입니다.



















이러한 욕망을 잘 다스리는 인내와 참을성이 성공자의 지름길이며



이러한 욕망에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여 인내와 참을성이 없다면 패배자의 지름길입니다.

















길은 멀더라도



현재의 만족과



현재의 기쁨과



현재의 즐거움과



현재의 행복을 위하여 살지 마시고

















보이지 않는 미래의 부자를 위하여



현재 보다는 미래를 위하여 사시길 바랍니다.









눈 앞에 보이는 욕망에 의하여 움직이는 하수보다는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욕망을 위하여 현재의 욕망을 기꺼이 참을 줄 아는



아름다운부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돈이 원수다.



돈이 원수다...



돈이 원수다.....











저 어릴 적 우리 어머니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삼 남매를 홀로 키울 실 때도 돈은 우리 어머니의 원수였습니다.



어두운 밤에 혼자 우시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도 돈은 원수였습니다.



어느날 대전이라는 낯선 곳에 오게 된 것도 돈이 원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대전에 온지 일년 만에 외식을 하자고 하시곤



고기집에서 맛있는 갈비를 사 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삼 남매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셨지만 갈비는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아까 많이 드셨고 일 때문에 먼저 가봐야 하신다고 하시곤 식당을 나가셨습니다.



















배고픔 앞에는 강자가 없듯이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어머니께서 가신다고 하여도 전 말리지 못하였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맛있는 고기가 어머니보다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돈은 어머니에게서 늘 원수가 되었습니다.



조그만 한 분식집을 할 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어머니는 한 겨울에 택시비를 아끼시기 위하여 늘 버스를 타셨는데 버스를 타시기 전에는



삼사일에 한번씩은 김치가 가득 담겨진 양철찜통을 들고 버스를 타셨습니다.



버스 안에서 신김치 냄새가 진동하였으며 자연히 운전기사의 구박도 매번 이어졌었죠.



하지만 사람이 어려운데 구박쯤이야 무시한다고 하지만, 양은찜통을 여자의 힘으로 들고



버스정류장에서 분식집까지 걸어가시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습니다.



자연적으로 팔이 아프시다고 몇 번이나 쉬시면서 김치 통을 들고 가셨죠.



따라서 어머니에게는 늘 돈이 원수였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돈이 늘 원수였습니다.



아들녀석 태권도도장에 보낼 돈이 없으셨기에 돈이 원수였으며



아들녀석 미술에 관심 있다고 하여도 미술학원 보낼 돈이 없으셨기에…



그리고 미술하면 밥 먹고 살기도 어렵다고 하셨기에 돈은 늘 원수였으며



아들녀석 수학여행 보낼까 말까를 고민하신 것도 늘 돈 때문이었습니다.



새 학기에 책값, 참고서 값 때문에 어머니와 언쟁을 벌일 때도 돈은 어머니에게는 원수였습



니다.



















이렇듯 어머니에게는 이 세상의 돈이 원수였습니다.



지금도 어머니에게는 돈이 원수입니다.



지금도 돈이 없으시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큰 아들에게 지원을 하지 못하는 마음에



어머니에게서 돈은 늘 원수였습니다.



















돈은 저에게서 원수였습니다.



남들 좋아하는 음식 마음껏 먹어 보지 못한 것도,



어릴 적 부모님의 아낌없는 사랑을 독차지 하지 못한 것도,



추운 겨울날 좋은 잠바하나 입지 못한 것도



비오는 우산하나 없어서 비를 친구 삼아 학교를 가던 추억도



태권도 도장을 보내달라고 때를 써던 것도



운동회 날, 소풍날 학교를 안간 추억들도 모든 것이 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기 한번 제대로 피고 살지 못하였습니다.



늘 어둠 속에서



늘 아웃사이드에서 중앙을 쳐다보며 부러워 하던 아이였습니다.



모든 이유는 간단하였습니다.









집안에 돈이 없다는 사실.











이 사실 하나는 자라나는 아이에게 자본주의의 계급을 알려주는 계기 밖에는 되지 못하였습



니다.



그 때는 계급이니 계층이니..빈부니..몰랐습니다.



하지만 “난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 지가 궁금하였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 인줄 알았습니다.





벗어 날려고 외면하면 할수록 더 빠져지는 사랑의 열병처럼 가난이라는 병도 빠져



나가려고 고뇌하면 고뇌할수록 더 가난 속에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돈이 원수였습니다.



군대를 가기 전에는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아르바이트나 어머니의 분식집 일을 도왔



습니다. 칼국수 두 그릇을 쟁반에 들고 지하상가를 돌아 다닐 때에도 돈은 원수였습니다.



한번은 백화점 11층까지 김밥과 김밥국물 등을 형님이랑 들고 가는데 수위아저씨가 승강기



를 타면 음식냄새 난다고 하면서 계단으로 들고 가라는 말에 김밥 30개와 국물. 김치, 단무



지 등을 들고 11층 계단까지 올라갔습니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자본주의는 아주 냉철하고도 비열한 존재이었습니다.



















일하지 않고는,



아니꼽고 치사하지 않고는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어 오지 않고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진리를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11층 배달을 마친 후 형님이 그러더만요



“더러워서 이런 짓도 못해 먹겠다고요”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돈은 벌었잖아……”

















그것이 인생이었습니다.



그것이 정답이었습니다.











더럽고 치사하더라도 그것은 바로 돈이 원수이기 때문에 치사하고 아니꼬운 것이었습니다.



돈이 원수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러한 아니꼬움과 치사함을 겪지 아니할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우리 형님이 고등학교 다닐 적 가출을 하였습니다.



그 전날밤에 어머니랑 돈 때문에 싸운 이후



아침에 보니까 형이 저에게 편지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종찬아 나 돈 벌러 간다.



돈 많이 벌어서 네가 원하는 것 다 사줄게”

















형님의 편지를 보고 나서 전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주마등처럼 형님과 우리 삼 남매 그리고 어머니의 고생까지 다 생각이 났었습니다.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던지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더군요.



소리 없는 통곡만 마음속에서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분명히 눈물이 나야 하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작은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아~ 눈물도 메마르는구나…



진정한 고통 앞에서는 눈물도 마르는구나…















한참동안 바보처럼 울고 있다가 속에서 뭔가 불끈불끈 올라 왔습니다.



내 지금은 돈 앞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바보지만,



돈이라는 너에게 언젠가는 멋지게 복수하는 사람이 되리라..라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이런 오기와 깡다구가 지금의 절 있게끔 만들어 준 것 같았습니다.





















지금 저에게서 돈은 더 이상 원수가 아닙니다.



돈은 저에게서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오래된 친구 같습니다.



과거에는 어머니와 더불어 돈은 원수였지만,



이제 저에게서 돈은 우리 애들에게 멋진 옷을 입히는 계기가 되고,



애들 가고 싶은 것 다 가지게 해주고,



애들이랑 같이 매년 외국으로 여행을 가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입니다.

















돈은 바라다 들이는 관점에 따라 원수일수도 그리고 친구일수도 있는



정말정말 이상한 녀석입니다.













분명 돈은 정말 이상한 녀석입니다.



한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친구였으며 나중에도 친구가 되며



한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원수였으며 죽을 때까지도 원수가 되며



한 사람에게는 처음에는 원수였지만 나중에는 친구가 되며



한 사람에게는 처음에는 친구였지만 나중에는 원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서민들에게 있어서 돈은 그렇게 친구 같지가 않는 것이 통상적인 예 인 것 같습



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도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부자집 아들녀석이 돈 관리 잘한 경우에는 끝까지 친구로 남으며



처음부터 부자집 아들녀석이 돈 관리 못한 경우에는 돈이 원수가 되는 것이며



처음부터 가난뱅이집 아들녀석이 돈을 벌지 못한 경우에는 돈이 평생의 원수가 되는 것이며



처음부터 가난뱅이집 아들녀석 이었지만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산 경우에는



드디어 돈과 친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돈과 원수 사이입니까?



여러분은 돈과 친구 사이입니까?





출처 : 맞벌이부부 10년 10억 모으기
글쓴이 : 배종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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